Home > 사회문화활동> 박물관대학총동창회



최위숙  
2009-07-31
2778
649
없음
박물관에서 - 綠
봄의 신호는 밥상에서 온다. 산천이 마른 겨울 빛을 머금고 있어도 누런 덤불을 들추면 촉촉한 흙에 여리지만 힘센 순들이 뾰족뾰족 솟아오른다. 달래, 냉이, 두릅, 돌나물, 머위 같은 풀들이 말린 시래기 일색이던 밥상 위 빛깔을 변화시킨다. 비로소 우리들은 봄이 왔음을  느낀다. 밝은 미나리의 녹색, 참나물의 녹색, 취나물의 녹색, 쑥색, 배추 색, 아욱 색... ... 등등. 그 빛깔을 보고 각각의 풀이 먹기 좋은 철과 맛을 알아보는 지혜는 들과 숲이라는 배움터에서 대를 이어 전해 내려왔다. 서로 다른 녹색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한국인은 긴 세월 몸속에 축척해 왔는지도 모른다.  
  사오월 들판에 푸른 물결이 펼쳐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보리밭일 것이다. 보리는 겨울에 심어 이른 봄에 싹을 틔우기에 사오월쯤이면 황색과 녹색의 중간색인, 형광빛을 머금을 정도로 밝고 강렬한 이 신록의 빛이야말로 한국 특유의 녹색으로 꼽을 만하다. 연한 녹두를 뜻하는 연두(軟豆), 녹두의 두록(豆綠), 버들가지의 유록(柳綠)은 모두 그대로 색 이름이 되었다. 봄에는 물빛조차 녹수(綠水), 여름의 벽색(碧色)이나 가을의 청색이 아닌 녹색으로 일컬어졌다. 여름으로 계절이 바뀜에 따라 녹색의 색상도 연잎의 녹색인 하엽(荷葉)에서 대나무색인 죽록(竹綠)으로 짙어지고 깊어지며 마침내 유록(黝綠)을 거쳐 검정에 이른다.
  또한 초목의 새 잎이 연한 초록빛을 띨 무렵에 내리는 비를 녹우(綠雨)라 하고, 짙은 여름에 내라는 비를 취우(翠)雨)라 이른다고 되어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녹색은 생명, 성장, 새로움 등의 긍정적 상징을 지녔다. 연상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같은 동양의 중국인이나 서구인들보다 녹색의 범주를 훨씬 넓게 여긴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말의 ‘푸르다’는 낱말은 청색과 녹색을 아우른다. ‘파랑(blue)'과 ’녹색(green)‘이 서로 나뉘어 발달해 온 문화권과는 다른 색채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녹(綠)은 오방색의 정색이 아니라 청색과 황색이 섞인 색으로 동방 정색의 간색에 해당하며, 파의 색에서 따온 총(蔥)과 물총새의 꼬리 깃을 일컫는 취(翠)등의 잡색으로 분화된다. 권위가 장엄히 서도록 꾸미는 의장 성격이 강했던 고대의 회화는, 넓은 의미의 단청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단청의 진채가 청록산수의 바탕이 되었으나 중세이후 수묵산수가 발달하면서 그 범주는 건축물의 의장으로 한정되었다.
  단청의 진채에서 녹색은 주목성이 높은 색이다. 녹색안료는 청동의 녹이나 공작석과 같은 광물을 갈아서 얻었고 배합에 따라 양록(陽碌), 뇌록(磊碌), 삼록(三碌)등의 색을 낸다. 유약을 구워내는 빛으로는 녹유도 있지만 비취색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선호하는 색이지만 옥이나 비취, 모두 수입품 이었기에 그를 대신해서 만들어 낸 빛깔이 청자의 비색이다.  
  흥미로운 것은, 파랑을 뜻하는 ’청자(靑瓷)‘라고 이름 하지만 한국인에게 청자의 빛깔은 녹색계열인 물총새의 비(翡)와 취(翠)를 상징하며, 실제 청자의 실제 값을 측정해보면 색상환의 회색에 더 가깝다고 한다.  박물관 유물실에 전시된 녹유합를 보면서 다시금 그 비색- 綠을  가늠해본다.
         


줄이기(-)
늘리기(+)


Total 189 / Today 0
99 가을에 전하는 사랑(경남신문칼럼-관장)   관리자 2009-09-13 2593 788
98 용서- 김종규 한국박물관 명예회장 칼럼   관리자 2009-08-30 2364 666
97 망중한-관장 경남신문 칼럼   관리자 2009-08-20 2464 620
96 아! 萬事인 人事(관장-거제신문 칼럼)   관리자 2009-08-20 2471 674
95 晝巨夜釜(관장 -거제신문칼럼)   관리자 2009-08-20 2761 666
94 박물관에서 - 綠   최위숙 2009-07-31 2779 649
93 제1기 이화-거제박물관 아카데미 열두번째 ..   정재윤 2009-07-17 2789 848
92 내 탓이오(관장 /경남신문 칼럼)   관리자 2009-07-04 2657 618
91 17기 박물관대학 강의(09. 6. 18)   정재윤 2009-06-24 2624 812
90 제1기 이화-거제박물관 아카데미 여덟번째 ..   정재윤 2009-06-24 2569 777
 



 
로그인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