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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0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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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김종규 한국박물관 명예회장 칼럼
용서·화해·겸양
  
출판박물관 관장이니 책 얘기로 시작해야겠다.

▲용서―얼마 전 서울대 심리학과 김명언(한국심리학회 회장) 교수가 내게 보내온 ‘긍정에너지 경영’에서 ‘용서’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이 책은 그의 미시간대 스승인 킴 캐머런 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것인데, 긍정은 에너지 발산의 원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긍정의 분위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서라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하고 산다. 그 실수의 횟수만큼은 아니지만 사과를 하고 또 용서를 받는다. 용서를 하는 입장에서 으레 ‘다 잊어버려 지난 일인데…’라고 관용어린 말을 하곤 한다.

이 책에 의하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의 성직자 데즈먼드 투투는 ‘용서란 사람들에게 잊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잊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다시는 그와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서는 이미 일어난 일을 눈감아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용서는 가해자를 이해하고 그들의 처지를 공감하는 것이고 가해자의 처지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들을 헤아려 감안하는 것이다. 용서는 가해자들에게 그들이 한 것만큼 갚아줄 수 있는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포기에 의해 피해자인 당신은 자유를 얻게 된다. 결국 당신은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가 처벌을 통해 복원될 수 없음을 안다. 지금 복수를 요구하는 것은 미래에 우리가 처벌한 자들의 자녀들이 다시 우리에게 복수하는 근원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소설가 김홍신 건국대 석좌교수도 자신의 저서 ‘인생사용 설명서’(해냄)의 ‘지금 괴로운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단원에서 용서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다. 내용인즉 김 교수는 뺑소니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범인이 잡혀 있는 경찰서로 향하며 그는 마음속으로 잔인한 복수를 다짐했다. 마침내 만난 운전자는 오돌오돌 떨고 있었고, 순간 그는 가해자를 끌어안고 말았다.

김 교수는 이러한 혼돈에서 “한 선배의 도움으로 엉킨 마음이 풀렸다”고 기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께서는 뭐라고 하실 것 같은가”라는 선배의 질문에 “용서하라고 했을 것”이라는 단순한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란다. 이후 그는 용서의 위대함을 배웠다고 한다.

▲화해―세계평화와 남북화해 그리고 인권신장에 앞장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다. 영면에 들기 전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영원한 라이벌이며 동료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병상을 찾았다. 40년 과거사에 대한 화해의 순간이었다. 국가 지도자로서 두 사람이 보여준 행보는 모든 국민에게 커다란 안정감과 평화를 주었다.

반면 이번에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하는 몹쓸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양김으로 대별되는 현대정치의 상징적 화합이 영원한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는 안타까운 순간을 맛보았을 것이다. 이렇듯 화해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문 소식을 전해 듣고 가냘픈 숨을 내쉬던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그 화해를 교감했다고 한다. 영면의 길에서 긴 평화와 안식을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한 감동이 밀려온다. 최근 필자도 사소한 오해로 소원해졌던 동료 박물관장과 해묵은 화해를 했다. 그와의 인간적인 화해는 우선 마음의 평화를 주었고 예전과 다른 이해와 존경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겸양―관장으로 있는 삼성출판박물관에서는 저자와의 교분을 통해 기증받은 ‘책을 건네다―저자 서명본’ 특별전을 열고 있다. 개막식에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을 비롯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 원로시인 김남조 선생, 미술평론가 오광수 선생, 성우 배한성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가 문화계 말석에서 쌓았던 자그마한 인간적 교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번에 전시된 책의 필자들로 박물관으로서는 귀한 자료의 기증자들이요, 내게는 그들의 필적을 좇아 가르침을 받게 한 스승과도 같은 소중한 분들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의미는 다름 아닌 겸양을 통한 사랑과 존경이다. 그들은 저서를 통해 하나같이 인간의 근본으로의 회귀를 노래하고 있다. 김후란 선생의 시집처럼 ‘사람 사는 세상에’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나는 한권한권의 내용은 차치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필자에게 전하며 적어준 서명 속에서 큰 겸양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명에서는 상대는 높여주고 자신은 낮추는 혜존(惠存), 청감(淸鑑), 인형(仁兄), 대형(大兄), 졸저(拙著), 소제(小弟)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겸양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분들이 더욱 더 크게 느껴지며 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 나도 그분들을 그러한 자세로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무릎을 꿇고 한 석공이 땀 맺힌 얼굴로 비석에 명문을 새기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한 정치인이 석공에게 물었다. “나도 돌같이 굳어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다듬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돌의 명문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역사에 나 자신을 새기는 게 소망이라오.” 그러자 석공이 대답했다. “선생님도 저처럼 무릎 꿇고 일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용서’ ‘화해’ ‘겸양’―가을의 문턱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김종규 /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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