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담는 그릇, 한국 박물관 100년의 의미
거제박물관장(경남 박물관협의회 수석부회장) 황 수 원
올해는 우리 한국 박물관이 개관 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은 1909년 11월에 문을 연 창경궁의 제실박물관(어원박물관 ; 御苑博物館 혹은 李王家 博物館)이 그 시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인 1915년 12월 1일 조선 총독부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해방이 되던 194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하여 개관하였다.
그 후 100년 동안 우리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제 약 600여개의 박물관(여기에는 미술관과 과학관, 동물원과 식물원 등을 포함한 것이다.)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왕가의 귀중한 보물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최초의 우리 박물관이나 특정한 호사가나 정치권력자의 기호나 학자들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러한 작업들이 초창기에는 일반 국민과는 무관한 일로 받아들여진 적도 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박물관은 모든 사람을 향해 개방되어있고,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면서 역사와 문화의 공감과 동감을 유도해 가고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이 지닌 숙제는 허다하다.
박물관이 그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문화 등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아카이브(archive)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그런 정보를 얻으려하고 있다. 유물이나 전시품 한 점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각적인 설명을 하여 관심을 끄는 역할을 할 이가 없기 때문이다. 관장은 행정과 예산, 회의 등으로 바쁘고, 큐레이터는 전시기획과 관람객 유치에 바쁘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이제 갓 보급하기 시작한 도슨트(전시물해설사)는 아직도 역량이 부족하여 관람객의 의외의 질문에는 전전긍긍한다. 게다가 박물관의 주된 고객인 학생들은 온라인게임이나 몇몇 한정된 전시물(예컨대 공룡, 로봇, 생물표본 등)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도 갤러리를 뛰어다니면서 순식간에 훑어보고 나가버린다. 우리고유의 토기, 도기, 청자나 백자, 불상이나 그림과 글씨는 그저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그 존재감마저도 미미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일주일 내내 10명이 찾지 않는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을 하는 이들은 그것이 취미이던 욕심이던 열정을 갖고 유물을 모으고 그리고 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손님이 외면하면 진열된 유물처럼 박물관도 함께 퇴락해간다. 유물이야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야 변치 않겠지만 박물관 건물과 박물관의 설립자들은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이런 돈 안 되는 일들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녀들이 이어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물론 국립이나 공립의 경우는 다르다.)
사람과 그 일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도 함께 사라진다. 민족문화나 국가의 정통성을 얘기하는 수 천 편의 논문이 있을 지라도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줄 유물이 이미 천덕꾸러기가 되어 없어지고 난 후에는 그 논문은 공허한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인정받지 못하는 논문은 계속 연구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어진다.
유물도 없어지고 그에 관한 글도 없어지면 그 문화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그 역사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 표랑하는 민족이 되고 구태여 국가를 지킬 필요도 사라진다. 독창적 문화와 독립된 국가를 지키고자 했던 피 흘린 항쟁의 의미도 없어진다.
우리는 자고새면 잘 살아야 한다고 하는 말을 숱하게 듣는다. 그러나 왜 잘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담론들을 벌인 적이 얼마나 있던가?
너무 진부하여 말할 필요도 없다는 선입견이 오히려 그 질문을 막아버리고 삶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들을 외면하게 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한국 박물관 100주년의 의미가 다만 박물관인들만의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한국의 박물관이 미래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존재의 필요성도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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